다음은 콜린 드베즈 저 ‘THE WALL STREET JOURNAL COMPLETE SMALL BUSINESS GUIDEBOOK’에서 발췌 편집한 내용이다.

창업은 양육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감정적 재정적으로 준비를 해야 할 뿐 아니라 혼자 설 수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헌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체가 혼자 선 후에도 언제나 어느 정도 관여해야 한다는 것도 양육과 비슷하다.

다음은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해보아야 할 5가지 내용이다.

1. 제품이나 서비스에 열의를 갖고 있는가?

창업 후 초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긴 시간을 일하면서도 적자를 보거나 이익이 미미할 때면 창업이 올바른 결정이었나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사장인 당신은 수석영업직원이기도 하다. 손으로 짠 스웨터에서 세무에 이르기까지 당신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스스로가 열정을 느낀다면 고객과 투자자들도 이를 느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고 초기의 흥분이 사라진 후에도 사업을 적극적으로 돌보기 위해 필요한 열정이 없다면 창업하지 않는 편이 낫다.

2. 위험을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는가?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직장을 그만두거나 사무실 임대계약에 서명하는 등 위험감수가 필요하다. 1978년 이스트햄튼에서 특별식 매장을 인수한 후 요리책과 TV방송, 제품라인 출시를 통해 사업을 확장시켜 온 이나 가텐은 이러한 위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벼랑에서 뛰어내린 후 어떻게든지 추락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열정이 많다 하더라도 사업실패를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은 수없이 많다. 입지선정 잘못, 사업부지 관련 규정을 둘러싼 문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공급망 이상 등. 성공은커녕 꾸준한 수입이 발생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위험회피적인 사람에게 창업은 적합한 선택이 아니다.

3. 나는 결정을 잘 내리는 사람인가?

일단 사업을 시작하고 나면 나 대신 결정을 내려줄 사람은 없다. 다음과 같은 초기결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집에서 일할 것인가 아니면 사무실을 빌릴 것인가? 직원을 고용할까? 고가로 갈 것인가, 중저가로 갈 것인가? 법인형식으로 창업해야 할까? 광고는 필요한가? 친구나 가족한테 돈을 빌려야 할까? 내 저축을 다 털어야 할까? 나에게 의존하는 고객과 직원이 생기고 난 후에는 이것보다 더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내가 내리는 결정이 사업성패를 가르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결정능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4. 수많은 책임을 떠맡을 의향이 있는가?

회사직원은 특정 기술이나 역할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사장은 모든 것을 사업에 바쳐야 한다. 특히 혼자 창업한 사람은 영업과 장부기장, 마케팅, 수금 등 수많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다양한 역할수행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창업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업체의 재정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특히 중요해졌다. 사업을 직접 운영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미리 알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준비를 더 잘할 수 있다.

5. 탈진을 피할 수 있을까?

창업 후 친구와 연락도 못하고 취미생활을 포기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면서 일주일에 7일 일하다 보면 탈진이 찾아와서 사업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1997년 첫 업체를 창업했던 제임스 짐바디는 너무 열심히 장시간 일한 끝에 창의성과 열정,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고 말았다고 전한다. 창업 5년 뒤 사업은 내리막길이었고 사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사업을 접은 그는 두 번째로 창업했을 때는 일요일에 쉬고 보트와 살사댄스 등 취미활동을 할 시간을 내며 종교단체를 통해 만난 다른 사장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5가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자기성찰을 한 결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창업에 뛰어들라.

http://realtime.wsj.com/korea/2012/08/01/%EC%B0%BD%EC%97%85%ED%95%98%EA%B8%B0-%EC%A0%84%EC%97%90-%EA%B3%A0%EB%A0%A4%ED%95%A0-5%EA%B0%80%EC%A7%80/ 

2012/08/02 20:59 2012/08/02 20:59


윤윤수 휠라 회장, 서울대 졸업식서 非서울대 출신 첫 축사
실패는 내 피와 살 - 혁신은 MBA서 배울 수 없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
가난한 농부의 아들 - 어려운 가정환경서 근성을… 서울대 떨어지며 겸손 배워
도전정신으로 글로벌기업까지 - 막다른 골목 가본 적 없는 요즘 젊은이들 너무 나약해

"서울대 졸업생 여러분, 많은 실패를 경험하십시오."

  24일 서울대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제66회 학위수여식에 윤윤수(67) 글로벌휠라 대표이사 회장이 특별 연사로 초청됐다. 졸업생 2500명이 참석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를 제외하면,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인사가 축사를 한 것은 처음이다. 윤 회장은 1974년 한국외국어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서울대는 "윤 회장이 동문은 아니지만, 기업가로서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맨주먹으로 사업을 일궈낸 기업인"이라며 "사업체를 운영하며 글로벌 전략을 펼친 점,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실시한 점 등을 서울대 졸업생들이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연사로 초빙했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이날 졸업생들을 위한 축사에서 '실패'를 강조했다. 그는 "혁신은 MBA(경영학석사)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불안한 경제가 여러분의 미래를 만만치 않게 만들지만, 역사적으로 세계 경제는 언제나 불확실했고, 힘들 때가 도전할 때"라며 "도전 정신이 농부의 아들이었던 저를 글로벌 기업인으로 바꿔놓았다"고 했다.

  서울대와의 개인적인 인연도 소개했다. 그는 "서울대는 제가 3번이나 입학하려 했다가 실패한 대학이기에 이 자리가 더욱 뜻 깊다"며 "그간 겪었던 고난과 실패가 저의 큰 재산이자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의대 3번 실패를 통해 겸손을,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는 인내심과 근성을 배웠다"고 했다.

  학위수여식이 끝난 뒤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윤윤수(67)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회장은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느낀 걸 새로운 세계로 출발하는 인생 후배들과 나누고 싶어 일주일 밤낮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정직, 성실, 참을성, 겸손 등은 어떤 인생을 살든 중요한 것입니다.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행운은 절대로 오지 않지요. 이런 덕목은 많은 경험과 실패에서 얻어집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실패가 피와 살이 된 예'로 들었다. 1945년 태어난지 100일도 안 돼 장티푸스로 어머니를 잃었다. 서울고 2학년 재학 중 아버지마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서울대 의대에 삼세번 낙방한 뒤, 진로를 바꿔 한국외대 정치외교과에 진학했다.

  학창시절에는 입주 가정교사를 전전하며 학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친한 친구에게 시험 답안지를 보여주다 적발돼 제적됐다. 윤 회장은 "막막한 나머지 영어라도 공부하려 카투사에 지원했다"며 "5달러에 대리 보초를, 주말에는 서울 투어를 시켜주며 미군에게 끈질기게 영어를 배웠다"고 말했다.

  군복무 3년 뒤 재입학 허가가 떨어졌지만, 입학금을 구하지 못했다. 학과 교수에게 부탁해 장학생이 됐다. 졸업을 앞두고 남들처럼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직장도 찾아봤지만 29살이라는 나이와 전공 때문에 만만치 않았다.

  별다른 지원자격 제한 없이 영어실력만 보던 해운공사(현 한진해운)에 늦깎이 입사했다. '여기서 남들보다 뒤쳐진 인생 10년을 따라잡아보자'고 결심했다.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하다보니, 잘하게 됐고, 일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요즘 젊은 세대들은 삶의 막다른 골목까지 가보지 못해 나약한 면이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반복된 실패로 젊은 시절 제 인생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 실패가 인생의 원동력이 됐지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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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3 13:50 2012/07/23 13:50

마음의 이야기 RSS Icon ATOM Icon 2012/06/04 16:28 김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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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이 짝인 이유를 아는가.

그것은 너의 손바닥과 나의 손바닥이 제대로 마주쳐야

"짝"하고 경쾌한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손금 볼때 제외하고는 낯선 사람 앞에서 좀처럼 손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로 와서 손바닥을 내밀었고, 나의 손바닥으로

너의 손바닥을 짝 소리가 나게 마주쳐 달라고 눈빛으로 이야기 하며 기다려 주었다.


내 손이 부끄러우워 떨려도 힘이 들어 땀이 나도 마주잡는 것을 개의치 않았던

네 손의 다가섬과 기다림 때문에, 그렇게 너와 나는 짝이 되었다.

2012/06/04 16:28 2012/06/0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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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10:49 2012/05/11 10:49

기회

마음의 이야기 RSS Icon ATOM Icon 2010/12/13 23:27 김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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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기회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2010/12/13 23:27 2010/12/13 23:27

기회

마음의 이야기 RSS Icon ATOM Icon 2010/11/27 23:44 김형철
자신에게만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억울한 마음이 있다면 한 번 자문해 보아라.

갑자기 세상이 나에게 스포라이트를 비추었을 때 곧바로 튀어나갈 당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 백지연의 <뜨거운 침묵> 중에서....-
2010/11/27 23:44 2010/11/27 23:44

2010/11/26 01:18 2010/11/26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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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박사’ 안철수의 성공론
대기업 불공정거래 관행, 중견기업 싹 말리는 행위
단기 이익에 집착케하는 주주자본주의 재고 필요

  그런데 최근 그가 다시 창업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소셜 게임을 만드는 벤처 ‘노리타운’의 산파역을 맡았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창업가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창업가의 성공 방법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가 오는 12월15~16일 열리는 ‘2010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특강할 ‘안철수의 성공론’을 한겨레경제연구소가 미리 들어봤다.

  안철수 교수는 한국의 척박한 기업 환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기업이 실패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시 환경입니다. 대학은 인력 공급에 게으르고, 금융권은 위험을 기업에게 모두 떠안기고, 핵심역량 이외 업무를 아웃소싱하려 해도 믿고 맡길 곳이 없고, 정부는 필요한 연구개발을 해주지 않습니다. 결국 벤처기업이 그 부담을 모두 떠안아야 합니다. 당연히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안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불공정 거래 관행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이어갔다. “창업 뒤 30년 동안 1조원 이상 매출을 올린 벤처기업은 사실상 엔에이치엔(NHN)과 웅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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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뿐입니다. 불공정 거래 관행은 중견기업의 싹을 말려서, 한국 경제 허리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벤처기업가는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뭔가 방법은 있지 않을까? 기업가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점은 없을까?

  “물론 기업가 스스로의 문제도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감안해서 창업해야 하고, 충분한 실력을 갖추어 활동해야 합니다. 한국적 환경에서도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 가지만 지켜도 실패 확률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안 교수는 첫째 좋은 사람을 내세운다. 혼자 창업하지 말고, 2~4명이 함께 하라. 그리고 서로 다른 성격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하라. 다만, 가치관만은 같은 사람끼리 모여라. 그리고는 좋은 제품이다.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지 말고, 시장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라. 기술자가 창업할 때, 이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점진적 실행이다. 처음부터 많은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한 번에 승부를 보려 하지 말라. 우선 한 걸음 나가 보고, 다시 뒤돌아보고, 그리고 한 명을 충원해 다시 한 걸음 나가 보는 일을 반복하라. 이게 엄혹한 환경에서 모험적인 기업활동을 하면서도 실패 확률을 줄이는 길이다.



 

2010/11/18 10:03 2010/11/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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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잠깐) 돌아왔다!

저자의 명성을 듣고 평소보다 일찍 강연장으로 향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한 시간 전부터 행사장 앞에는 긴 줄이 서 있다. 팬미팅 못지 않은 열기. 넓은 강의실에 이내 사람이 꽉 찼다. 누구나 꼭 한번 만나고 싶어하는 언니, 보기만 해도 기운이 불끈 솟아오를 것 같은 언니, 한비야가 유학을 마치고 (잠깐) 한국에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일주일 전만 해도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었던 전(前) 터프츠대학교 대학원생, 전(前) 월드비전 직원, 현재는 백수 한비야입니다.”

한비야는 그렇게 자기소개를 하고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얼굴로 독자들을 둘러본다.

“여러분, 지금 수요일 저녁, 여기 대치동 오지예요. 이런데 까지 찾아오시다니, 여러분이야 말로 열정 덩어리에요. 저에게 열정을 물어보실 게 아닌 것 같아요!”

끊임없이 미소를, 웃음을 주고 받았던 이날의 시간, 초침의 똑딱거림이 아까울 정도로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슈퍼에너지, 그녀는 여전했다. 한비야는 최근 자신의 근황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9년간 현장경험 하면서 아쉬움이 많았어요. 대체 어디에 병목현상이 있나 궁금했어요. 현장과 이론을 겸비하면 좀 더 쓸모 있는 구호요원이 될 것 같아서 찾아보니,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학교에 저에게 딱 맞는 과정이 있었어요. 인도적 지원에 관한 석사 과정으로, 2학기 수료하고 논문 제출하면 졸업하는 코스예요. 원래 2년을 계획하고 유학을 갔는데, 1년에 과정을 마친 거죠. 제가 잘해서 그런 게 아녜요. 원래 1년 코스예요.(웃음)”

외로운 타지, 공부하면서 가장 큰 힘이 된 건, 독자들의 서평. 감상을 넘어 독자들의 삶 이야기가 담긴 서평을 보면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단다. “제가 정말 지치고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을 때 큰 응원이 되었어요. 제가 유학 간다고 하니까, 다들 어디서 돈을 대주신 줄 아는데, 이렇게 생돈 내고 유학 간 거 처음이에요. 『그건 사랑이었네』 팔아서 유학 간 거예요. 그러니까 책을 한 권이라도 사신 분은 저를 유학시킨 분입니다!(웃음) 고마워요.”

한비야, 인생의 환승역에서
돌아온 슈퍼에너지! 한비야가 그간의 근황을 전했다.

이제 남은 1년, 한비야는 자신에게 안식년을 주기로 했단다. 그녀 나이 서른다섯에 인생 역전처럼 회사원에서 오지탐사원으로 변신,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녀는 쉼 없이 달려왔다. 오지탐사를 마치자마자 월드비전에 들어가 9년간 정신 없이 일을 했고, 1년간 국제구호 못지않은 강도로 공부에 매진했다. 그렇게 꽉 채운 10년이었다.

“즐겁고 뜨거운 삶이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진한 것 같아요. 전 지금 인생의 환승역에 서 있어요. 이제 앞으로 적을 둘 곳을 정하지 않았거든요. 큰 터미널에 온 기분이에요. 어느 차를 타야 할까? 내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고 가슴 뜨거워지는 일을 하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나라는 꽃을 어떻게 활짝 피울까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긴급구호나 국제구호에 관련된 일일 거예요.”

예상치 못한 언니의 고백에, 독자들 숨죽이고 이야기를 경청한다. 마치 앞길을 내다보는 듯 확신의 찬 발걸음으로 오지, 육지, 전쟁터를 걷던 그녀도 이렇게 멈춰서 숨을 고른다.

일단 온전히 주어진 1년, 그동안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보낼 예정이다. 함박 웃음을 머금고 ‘자랑’한다. 백두대간 종주다. 소개팅보다 산이 좋다는 한비야다운 계획이다.

“대학교 때부터, ‘내가 이번에 간다!’는 말만 지겹게 했어요. 다음 주부터 당장 시작합니다.” 이미 계획도 짜두었다. “일단 24구간으로 나눴어요. 혼자 짐을 지고 걸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으니, 3박 4일 코스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면서 종주할 계획이에요. 한 구간당 1주일씩 걷기로 하면, 6개월 걸려요.”

일단 11월 중순까지 강행할 예정이다. 이후에는 겨울을 피해 중국에 가 있을 예정. “다음 해 봄까지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한국어처럼 잘하고 싶어요. 그렇게 공부하고, 5월에 돌아와 다시 종주를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백두대간 종주하면 좋은 생각들이 많이 날 것 같아요. 그렇게 제 인생의 다른 장으로 넘어갈 생각입니다.”

1958년 아래로 태어난 동생들, 제발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길!
여전히 꿈꾸고 있는 한비야 “내 50대가 기대되요!”

독자와의 만남 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무대 위에 서기 전까지, 독자들이 남긴 글들을 붙들고 있던 한비야. 가장 많이 나온 질문 몇 가지를 추렸다. 많은 독자들이 매번 한비야에게 답을 구하는 질문들을 추렸다. 역시 1번은 이거다.

“비야 언니, 저 지금 새로 시작하기에 좀 늦은 거 아닌가요?”

방금 전까지, “나의 50대가 정말 기대된다. 앞으로 내가 뭐가 될지 궁금하다!”고 해맑게 외친 비야 언니에게 이런 고민,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늦다니, 네버네버네버! 한비야가 매번 책에 쓰고, 강연으로 외쳐서, 그녀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숙지하고 있을 그 이론, 인생 축구장 이론! 여기서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인생을 축구로 보자면, 30대, 전반전 30분 뛰고 있는 선수잖아요. 전반 30분 뛰고 질 것 같다고 포기하는 선수가 어디 있나요? 여러분, 20대에 해야 할 일, 무슨 리스트, 이런 것에 절대 속지 마세요. 사람마다 끓는 점이 따로 있어요. 각각의 끓는 점이 다른데 그깟 리스트에 맞춰보고 늦었다고 합니까? 적어도 수요일 7시 여기 앉아 있는 열정을 가진 여러분은 그러지 말아요. 여러분의 열정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요?”

30대라니, 게임의 전반부도 끝내지 않은 핏덩이란다! 1958년(비야언니 태어난 해다) 아래로 태어난 사람, 동생들! 제발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란다.

“자신과 정면대결 해보세요. 정말 할 수 없는 일일까? 핑계나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힘이 없어서 안될 것 같으면, 힘을 키우면 되요. 우린 매일매일 진화하고 책을 읽는 사람이잖아요. 매일 뭔가 노력하는 사람인데, 한계라는 것, 언젠가 넘어설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아무리 얘기해도 다시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지금은…… 그래도 제 상황은……” 한비야는 단호하게 말한다. “받아들이는 건 개인의 몫이에요. 저에게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질문만큼은 더 이상 묻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50대 넘으면 마치 인생 다 산 것처럼 마무리하려고 하잖아요.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해봐요. 물론 체력은 좀 떨어지겠지만, 인생의 설계는 예전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해낼 수 있어요. 끝판이야, 끝물이야 하지 말고 매일매일 업데이트하고 진화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죽는 날이 가장 멋진 날이 되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30대가 뭐라고요? 다시는 그 얘기 듣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 순간에 한 번만 더 두드려
객석에 앉은 독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한비야

“좌절할 땐 어떻게 하나요?” 이것 역시 한비야에게 들어오는 단골질문. 늘 웃는 얼굴, 씩씩한 모습 때문에 좌절 따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녀도, 때때로 좌절한다고 고백했다. “제가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게 아니라, 잘 된 일만 얘기하니까 그래요. 저 이번에 보스턴에서도 남자친구 사귀려고 노력했는데 안됐잖아요!(웃음)” 객석에 또 한 번 큰 웃음이 터졌다.

“더 이상은 안될 것 같다, 싶을 때가 있잖아요. 여기까지가 내 최선이고 한계다, 싶은 순간. 그 순간에 저는 딱 한번 더 해봐요. 밤 새도록 문을 두드렸는데 주인이 안 나와요. 딱 한번만 더 두드리면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냥 돌아서는 건 너무 아까워요.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딱 한번 더 노력하면, 더 이상 후회가 없어요.”

“저도 하고 싶은 일의 반의 반도 못하고 살아요.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우선순위 1, 2번을 하고 살기 때문에, 아쉬운 게 없어요. 또 내 힘의 100퍼센트를 쓰고 나면,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어요. 자신감이라는 건, 내가 전부 잘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100퍼센트 몰두 할 수 있다는 자신, 나를 믿는 힘이에요. 그럴 때 결과와 상관없이 자기가 예뻐 보이지 않겠어요?”

한비야는 인생 역시 등산에 비유했다. 각자에게 주어진 어려운 시간들은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오르막길이라고 표현했다. “내리막 길은 근육이 붙지 않아요. 오르막을 오를 때 근육이 붙고 폐활량이 늘죠. 그때 단단해질 거예요. 오르막을 피해가고 싶다는 의견도 존중해요. 다만 오르막이 왔을 때 이게 단련기간이구나, 오르막이라 힘든 거구나, 내 장딴지에 단단한 근육이 붙는 중이구나,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따뜻한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힘드실 거예요. 여러분. 저도 등산 다니는 사람이라 잘 알고 있습니다. 힘내시고요. 무조건 파이팅입니다. 제 응원이 필요할 때 이 책을 보세요. 저자와 독자가 서로 응원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35년간 품은 세계일주의 꿈, 갑자기 결정한 것 아냐
월드비전에서 활동할 때의 모습

이어 현장에서 독자들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언니는 외로울 때 어떻게 하나요?” 한비야가 결혼 및 애정전선에 관한 얘기는 사절이라고 진작에 경고(?)했지만, 첫 번째 질문으로 던져졌다. 허나, 궁금한 걸 어쩌나. 찬바람만 불어도 시큰해지는 연약한 우리들처럼 비야 언니도 가끔은 외로울까? 저렇게 강한 언니의 “나도 그래”란 말만 들어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한비야는 그랬다. 우리들과 같이, 웃고 울고, 기뻐하고 그만큼 좌절하고, 외로워하는 “저도 그런 사람이에요” 외로움은 “인생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세트메뉴의 한 가지””다. “가슴 뜨거워지는 설렘, 외로움, 두려움, 흔들리는 마음, 이게 다 한 세트라고 생각해요. 겨울에 추위가 있죠? 추위, 인정! 그럼 난로를 켜거나 따뜻한 옷을 입어서 추위를 달랠 수 있어요. 외로움? 그것도 인정. 징징댈 수 있는 친구를 찾거나, 일기장에 털어놓거나 하는 식으로 달랠 수 있겠죠. 전 개인적으로 일기장을 추천해요. 매일매일의 감정의 변화를 잘 기록하는 일, 내가 얼마나 조금씩 커가는지 지켜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질문은 용기에 관한 질문이다. “언니는 어떻게 ‘갑자기’ 세계일주를 떠날 용기를 냈나요?” 한비야는 그 일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꾼 꿈이에요. 그저 서른 다섯에 구현이 된 거지, 1년 전에 계획해서, 회사 때려 치고 간 게 아니에요. 정말 어떤 일이 쿇고 싶을 때, 다른 것들이 희생이 되요. 그럴 때 용기가 나는 거예요. 정말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 용기가 나는 거죠. 저에겐 그랬어요. 역시 제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 한 일 같아요.”

이어진 질문, “매년 전쟁이 나고, 기아가 발생합니다. 모든 걸 쏟아내도 세상이 나아지지 않는데 직업적 회의감이 들지 않나요? 어떤 마음 가짐으로 일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비야는 이 ‘핵심 질문’을 듣고, 이제까지보다 한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밤잹 새가며 7만 명을 먹일 식수대를 만들어요. 뒤돌아서면 총탄 소리에 박살이 나 있어요. 이럴 때 우리의 땀은, 우리의 기도는 뭔가요? 아무리 물을 퍼 날라도, 수도꼭지가 다 열려있어서 완전하게 해결이 되지 않아요. 이럴 땐 수도꼭지를 먼저 잠가야죠. 알면서도 힘이 없어서 뒤치다꺼리만 하는 거예요. 정말 안타까워요.”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런 엄청난 고통을 치유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만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함께 두려워하고, 아파하는 것을 함께 아파할 수 있을 뿐이다. 가끔은 고통과 원망과 회의 앞에서 흔들릴지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p.132)

“그러면 이 일을 하지 않았어야 했을까요? 우리는 그 동네 7만 명 사람들에게 물만 가져다 준 건 아닌 것 같아요. 함께 어려움을 넘기길 바라는 사랑을 남긴 것 같아요. 수도꼭지를 잠그고 싶어요. 언젠가 잠글 거예요. 수도꼭지 여는 사람의 팔을 비틀던지, 설득하든지 어떻게 해서든 근본적으로 해결해 악순환을 멈추고 싶어요.” 한비야의 꿈이자 의지다.

이후에 예정되어 있는 강의 일정 때문에 아쉬운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해야 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끊임없이 독자에게 응원을 건넨 그녀는 마지막까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도움을 구하는 ARS에 기꺼이 전화 한번 거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누구나 죽죠. 우리는 왜 먹나요? 어차피 죽을 거. 그렇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고, 한 끼 먹을 수 있다는 그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제 책을 읽은 독자들은 그런 ARS가 떴을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제 나는 새로 단 날개를 활짝 펴고 다시 지도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몹시 궁금하다. 그리고 설렌다. 내 등 뒤에서 여러분의 응원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도 여러분을 목청껏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마시길.(p.298)

2010/10/23 19:31 2010/10/23 19:31

 "대학생때는 가능한 하나라도 더 많은 분야를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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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ST 안철수 교수의 '자신의 미래를 디자인하라-전문가에게 필요한 5가지 자질'을 주제로 한 특강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안 교수는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 자기가 아는 것을 제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 긍정적인 사고방식, 평생 학습, 자기 한계를 넓히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5가지 자질로 꼽았다.

  안 교수는 "예전에는 상식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특정 분야의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지만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는 상식이 아닌 시대"라며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을 갖춰야 현대사회에서 전문가로 일하고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는 혼자서 많이 알기만해도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이젠 전문지식에 설명능력이 합쳐져야만 전문가로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며 "설명능력이 떨어지면 전문능력도 쓸 수 없다. 혼자서 세계수준의 전문가라고 자부해도 팀원이나 주위에서 보면 실력이 없는 사람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특정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을 갖췄다는 일본 도요타의 'T'자형 인재를 설명한 뒤 "여기에는 다른 사람과의 팀워크는 강조가 안되고 있다. 이는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일본의 전문가상이지 한국의 전문가상은 아니다"라며 "한국의 전문가상은 전문성과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 설명능력까지 포함된 'A'형 인재상이 더 적합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잘 안되는 시기를 얼마나 잘 보내느냐'가 인생의 핵심으로, 그렇기 위해서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필요하다"며 "어려운 시기는 현실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한다"라고 조언했다.

  강연이 끝난 후 이어진 질의응답시간에 청중들은 안 교수에게 '대학생일때 한번쯤 경험해보아야 할 것',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삶의 목표' 등 평소 궁금해하던 사안들을 묻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잘할 수 있는 일은 시도를 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기에 학창시절에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책은 요약본은 절대 읽지 말고 본문을 읽고, 50권의 책을 읽더라도 책 읽는 시간과 똑같은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깨닫고 행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또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를 가져야 성공했다는 것은 사회적 잣대의 성공일뿐이다"라며 "성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에 성공의 정의를 스스로 세워야한다. 사회적 성공을 한 사람들이 불행해진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기만의 성공의 정의를 안가져서 그렇다.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니 불행해 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0/02/02 20:55 2010/02/0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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